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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화가 노정란의 근작들

송 미 숙 ㅣ 미술사가, 미술비평

중견 화가 노정란의 이번 개인전 작품들은 3년 전 같은 화랑에서 가졌던 작업들과 동일한 선상의 주제인 ‘황금분할’ 과 ‘색놀이’로 일관하고 있다. ‘황금분할’이란 사실 주제라기보다는 완벽한 이상미의 비율, 즉 개개의 색놀이 작품이 지니는, 혹은 지녀야하는 구성의 질서, 기하학적 구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의 틀 속에서 작가는 그 특유의 색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유희한다. 여러겹으로 쌓아올린 대체로 강렬한 원색위주의 색면들은 한 방향으로 흐르다가 다른 색면들과 만나는가 하면 겹쳐지고 스며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촉감과 표정을 화면에 연출해 내고 있다. 색체들은 여전히 화려하고 육감적이며 때로는 명상적이기도 하지만 이번 근작에서 더욱 뚜렷해진 사실은 표현이 훨씬 명쾌하고 객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가 이제 그림을 나아가 세상을 자신내부의 눈으로 보기보다는 좀 더 거리를 두고 불 수 있는 여유에서 그래서 이전의 ‘표현주의’에서 ‘고전주의’로 선회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가정은 직선과 곡선으로 정의된 형태의 단순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구획화된 색면, 그리고 색채에 대한 감정을 황금분활이라는 구성의 틀로 엮어 여과, 정리하려는 그의 의도에서 질서로 향한 자세를 읽어 내기는 어렵지 않다는데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필자가 노정란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이 그가 잠시 귀국해서 가진 두손 화랑에서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음의 풍경 Mindscape]이란 타이틀의 연작이었고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작가를 닮아 화면들 또한 투명하고 밝고 화려한 색채, 활력과 번득이는 재기로 넘치는 붓놀림과 얼룩들로 점철된 다채로운 촉감,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4년 가진 전시(서미화랑)에서 작가가 심상치 않은 심경변화를 겪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색채는 어둡고 깊어져 우울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상정하고 있는가 하면 못,복숭아 혹은 무한대를 상징하는 기호와 같은 형상들도 우울한 색채와 더불어 작가의 마음의 상처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하였다. 이렇게 비교적 자전적인 내면풍경에서 일탈하려는 시도는 4,5년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혼돈스럽지 않게 머리를 맑게 하고....나의 정신적인 여유공간을 찾기 위하여 내 눈의 초점을 멀리 맞추고 사물을 관조하고 싶다.”는 그에게 자신을 비우고 진정 자유로워지는 것이 그가 그림에서 추구하고자 원했던 ‘진실’에 도달할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색채는 이제 자유로운 욕망의 실체며 그것은 음식과 성에 대한 욕망, 다시말해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욕망의 본형이며 회화는 그것의 실현이며 색놀이는 그것의 체험이자 과정이다. 미술사적인 잣대로 보면 최근의 그의 작업이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모더니스트 순수형식회화의 언술로 불 수 있겠으나 그자신의 지금까지의 화업의 역사에서는 혼돈에서 질서로, 개인에서 보편으로, 표현에서 절제의 감성으로의 전이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인스톨레이션과 비디오, 멀티미디어아트가 추세인 작금의 화단에서 순수모더니스트회화라는 한가지 길만을 고수해오고 있는 그에게 경의를 보내며 아울러 극히 최근에 회화의 복권을 주장하고 있는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어 그의 다음작업을 필자 나름대로 더욱 간결해진 그림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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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덕화랑 전시도록,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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